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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할인점의 두 얼굴

퓨전마법사 2006. 2. 15. 13:50
1962년 미국 아칸소주 시골에서 구멍가게를 연 샘 월튼(월마트 창업자)의 경영방식 은 복잡한 판매전략과는 거리가 멀었다. ‘상시 저가 정책(ALWAYS LOW PRICES)’이 고객 유인전략이기는 했지만 가장 큰 성공비결은 고객과 지역사회, 제조업체와 함 께 하려는 그의 ‘장사꾼 영혼’이었다. 월마트는 2002년 포춘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중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2003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 1위 로 뽑혔다.

‘월마트 효과(Wal-Mart Effect)’란 말이 있다. 월마트가 후진국에서 수입해온 제 품을 헐값에 팔아 인근 상인들과 제조업체가 몰락했다는 부정적인 표현이다. 하지 만 요즘 미국에서는 ‘월마트를 배우자’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컨설팅 회사 인 맥킨지는 신경제 호황은 정보통신 산업이 아니라 전통산업의 높은 생산성에서 비롯됐으며, 그 중심에 월마트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 유통업체의 위세는 대표기업인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못지 않다. 월 마트나 까르푸 같은 글로벌 기업도 이 땅에 상륙해서는 웬일인지 힘을 못쓰고 있다 . 신세계 주가는 한 때 50만원을 넘어섰고, 롯데쇼핑은 높은 공모 가격에 상장절차 를 밟고 있다. 원화강세가 지금처럼 가파르게 이어지면 내수경기가 더욱 탄력을 받 아 유통주 시대가 열릴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하지만 ‘함께 사는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대형 유통업체들의 수행평가 점수 는 아직 멀었다. 제조업체의 판촉사원을 지원 받아 ‘손 안대고 코 푸는’ 영업을 하고 있다. 수수료 매장이라는 명칭으로 매출액 30%까지를 앉아서 챙기기도 한다. 유통업체가 아니라 사실상 부동산 임대업으로 불러도 대답이 궁색해지는 이유다. 좀 심한 표현을 쓰자면 유통업체의 이익은 제조업체 몫을 고스란히 빼앗은 것으로 봐야 한다.

‘기생충알 김치’ ‘쓰레기 만두’같이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사건은 대형 유통 업체들이 가격을 지나치게 후려치다 보니 생긴 일이다. 눈앞의 매출 확대에만 매달 리다 보니 할인점은 싸구려 중국·동남아 제품 판매장, 백화점은 해외명품 수입상 으로 바뀐 듯하다.

어느 신용카드 조회기 업체는 지난 설 대목 때 대형 유통업체들에게 각각 4000만~5 000만원 상품권을 강매 당했다. 최대기업인 A사와 거래를 트며 상납한(?) 액수는 앞으로 그 회사와 13년간 거래해야 원가를 뽑을 정도의 수준이라고 한다. 말로만 윤리경영이지 한국의 유통업체들은 조폭보다 무섭고 강도보다 뻔뻔하다.

대형 할인점들이 땅 값이 비싼 수도권을 피해 중소도시로 몰려가고 있어 지방 자영 업은 이미 고사 직전이다. 서민경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지방에서는 돈이 씨가 마 르고 있다. 양극화에 대한 대책은 서민에 대한 ‘어설픈 증세’가 아니라 유통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중소유통 종사자는 153만명으로 4인 가족 기준으로 할 경우 600만명이 넘는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일본의 고이즈미 정부는 대형할인점 출점을 막는 법을 제정 하는 등 유독 유통에 대해서는 규제의 칼날을 세우고 있다. 정부는 할인점 가격파 괴가 물가안정에 기여한다고 해서 수수방관할 때가 아니다. 결국 부메랑이 돼 가격 인상을 부추길 때가 오지 말란 법이 없다.

규제완화 시대에 소비자가 많이 찾는 할인점 이용을 무턱대고 막을 수는 없다. 대 형화와 현대화는 유통산업에서 피할 수 없는 대세다. 다만 유통업체들이 정도(正道 )경영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정부 몫이다. 자율적인 규제 역시 시급하다. 예를 들면 24시간 영업이나 연중무휴 개점은 지양하고, 대형 할인점이 제조업체·지역 영세상인들과 협약을 맺어 공존공영의 길을 찾아보면 어떨까.

[윤영걸 주간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