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어는 '어른'이 되고픈 마음의 반영
경기도 수원에 사는 김미영(35세) 씨는 얼마 전 다섯 살배기 딸과 또래 친구들의 대화를 듣고 깜짝 놀랐다. 한 아이가 엉뚱한 놀이를 제안하자 다른 아이들이 "너 미친 거 아냐?"라고 비꼬듯 말했기 때문이다. 이는 미영 씨 네 가족이 자주 보는 한 개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유행어. 아무리 유행하는 말이라지만 어린아이들 입에서 다른 친구를 비하하는 말이 나오다니…. 사실 요즘 유행어는 세대를 초월한다. 유행어를 따라 하면서 친구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고, 모르는 친구들에게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우쭐한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다. 또 유행어를 말하면 대체로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하거나 재미있어하는 반응을 보이므로 아이는 더 열심히 유행어를 남발한다. TV나 일상에서 유행어를 말하는 사람들은 주로 어른. 아이들은 어른들의 특별한 언어인 '유행어'를 따라 함으로써 마치 자신이 '크고 대단한' 존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도 이유다. 실제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아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말은 좀처럼 유행되지 않는데 여기에는 또래가 쓰는 말이 아닌 어른들이 쓰는 말을 흉내 내고 싶은 심리가 숨어 있다.

유행어는 센스의 척도?
아이가 처음 유행어를 말할 때 부모들은 대부분 대수롭게 않게 여긴다. 오히려 다른 아이들보다 '언어 발달'이 빠른 게 아닌가 생각할 정도. 실제로 또래보다 언어 발달이 빠르거나 상황 판단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적절한 타이밍과 분위기에 맞춰 유행어를 구사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유행어가 아이의 사회성 발달이나 또래 친구를 사귀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유행어에 풍자와 은유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아이의 유머 감각이나 상황 판단 능력 발달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아이의 언어와 인지 발달 능력의 지표로 삼는 건 무리. 그리고 다른 사람을 비하하는 의미를 내포한 유행어는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도덕성 발달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혼내야 할까? 모른 척 할까?
만약 아이가 비속어나 다른 사람을 비하하는 유행어를 사용한다면 당장 금지시켜야 한다. 하지만 단지 재미를 주거나 풍자의 의미가 있는 정도라면 굳이 말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 소아정신과 전문의의 조언. 유행어는 말 그대로 잠시 지나가는 말일 뿐 그 유행이 수그러들면 아이 역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운 유행어를 지나치게 따라 하며 집착한다든지, 잘 구사하기 위해 일부러 연습까지 한다면 인지·정서 발달에 지장을 줄 수 있으므로 적절한 지도가 필요하다.

Editor tip 아이의 유행어, 이렇게 고쳐주세요!

● 욕설이나 다른 사람을 비하하는 유행어가 튀어나왔다
곧바로 아이의 눈을 쳐다보면서 "그런 말은 나쁜 말이야. 이제부터는 하지 마"라고 따끔하게 말한다. 아이가 이해하지 못했다면 "네가 하는 말이 어떤 뜻인지 아느냐"고 물어본 뒤 그 말이 왜 나쁜지 잘 알아들을 수 있게끔 설명한다.

● 또래 친구들도 다 쓰는 유행어라는 핑계를 댄다
친구들에게 "나쁜 말이니 다 같이 쓰지 말자"고 말해볼 것을 제안한다. 혹시 아이의 따돌림이 염려된다면 친구들과 있을때는 재미로 말하더라도 잘 모르는 사람이나 어른들 앞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도록 주의를 준다.

● 한두 번 하다가 말 줄 알았던 유행어를 계속 남발한다
아이의 유행어에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아이가 계속적으로 유행어를 사용한다면 그를 대신할 만한 적절한 어휘를 골라 고쳐 쓰도록 한다.

● 질 나쁜 유행어가 나오는 TV 개그 프로그램을 꼭 보려 한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이뿐 아니라 엄마아빠도 함께 무분별하게 유행어를 남발하는 TV프로그램을 보지않는 것이다.

진행 한보미 기자
사진 추경미
도움말 손석한(연세신경정신과 원장)
Posted by 퓨전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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