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코드' 때문에 전기요금 샌다 |
[오마이뉴스 김정혜 기자]
"에어컨? 이 사람 정신이 있어 없어? 한 달 전기요금이 얼만지 알기나 해?" "나와봐야 얼마나 나오겠어. 그것도 일 년에 두어달인데…." "두어달? 두어달이 문제가 아니야. 에어컨을 사용해서 적용되는 누진세가 얼만줄이나 알아? 전기요금 영수증 좀 가져와 봐." 부러진 날개 한번 바꾼 것 말고는 6년 동안 별 탈 없던 우리집 선풍기, 드디어 올여름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우선 목이 앞으로 푹 숙여지더니 어째 정면으로 고정되지가 않았고, 타이머도 제 기능을 못했다. 또 회전할 때마다 '턱턱'거리는 기분 나쁜 소리까지…. 서비스센터에 알아보니 수리비가 배보다 배꼽이란다. 해서 남편에게 어렵게 이야길 꺼냈건만 난데없이 '누진세' 공부만 하게 됐다.
"이번 달 우리집 전기사용량이 285kwh고 전기요금은 3만9210원이야. 이 요금이 어떻게 나왔느냐 하면, 우선 300kwh까지는 기본요금이 1430원이야. 그런데 100kwh 단위로 1kwh당 전력량 요금이 더 늘어나. 그러니까 처음 쓴 100kwh 요금은 5510원이지만 추가된 100kwh는 1만1380원이고, 나머지 85kwh는 1만4305원이 되는 거야. 다 더하면 3만2625원이고 여기에 부가세·전력기금·TV수신료까지 붙은 거지. 여기에다 에어컨을 써봐. 한 달에 100kwh만 써도 총 전력량이 385kwh이 되니까 기본요금은 3420원으로 늘고, 전력량 요금은 6만2000원이야. 100kwh만 더 써도 요금이 2배가 되는 셈이지. '전기먹는 하마' 에어컨이 100kwh만 먹겠어? 전기요금 10만원이 남 얘기가 아니라니까." 탄력붙은 남편 잔소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숙제까지 안겼다. "지금 이 순간도 사용하지 않는 전기가 얼마나 흐르고 있는지 당신 아마 모를 거야. 그런 전기를 뭐라고 하는지 알아? 그리고 가전제품마다 노란 스티커가 붙어있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이 두 가지는 숙제야. 이번 기회에 전기에 대해서 공부 좀 해봐." 남편이 이럴 만도 하다. 전원코드가 그냥 꽂혀있는 것만 봐도 '코드 뽑으면 (전기) 안 잡아먹지~'라며 애교스런 잔소리를 하는 남편. 사용하지 않는 전자제품도 전원코드가 꽂혀 있으면 전기가 흐른다는 것, 그 정도는 나도 안다. 그런데도 번번이 잊어버린다. 컴퓨터며 전자레인지며 TV며 오디오며…. 그러나 남편은 그 방면에선 참 철저한 편이다. 오며가며 소리소문 없이 안 쓰는 코드를 뽑아놓는다. 도대체 얼마나 절약되길래? [첫번째 숙제] 가전제품에 붙은 노란 딱지의 정체는?
우선 가전제품마다 붙어 있는 노란 스티커는 '에너지소비효율등급표시'였다. 현재 산업자원부와 에너지관리공단에서는 에너지절약형 제품의 보급 확대를 위해 '에너지소비효율등급표시제도' '에너지절약마크제도' '고효율에너지기자재인증제도' '건물에너지호율등급인증제도' 등 4가지의 에너지 효율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 주부인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게 바로 '에너지소비효율등급표시제도'.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고 보급률이 높은 제품을 대상으로 1~5등급으로 나눠 라벨을 제품에 붙이도록 하고 있다. 모든 제조업체들이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고 최저효율기준에 미달하는 제품은 아예 생산과 판매를 금지하는 제도다.
'에너지절약마크제도'에 대해서도 우리 소비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는 '대기전력'을 감소시킬 수 있는 절전제품을 보급하려는 제도. 사무기기·가전기기 등을 대상으로 20품목에 대하여 실시하고 있으며 에너지절약마크를 부착한 제품은 일반제품에 비해 30~50% 에너지절약효과가 있다고 한다. 두번째 숙제의 정답은 바로 '대기전력'. 컴퓨터, 텔레비전 등 사무기기, 가전기기는 실제로 사용하지 않는 대기상태에서도 많은 전력을 소비하고 있는데, 이를 대기전력이라 한다. 특히 복사기나 비디오는 대기전력소비가 전체소비전력의 8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두번째 숙제] 대기전력소비 만만치 않네
이젠 배웠으니 당연히 확인해봐야 할 터. 우리 집 가전제품들의 에너지소비효율등급을 살펴보았다. 냉장고, 정수기, 김치냉장고, 세탁기 등 모두 1등급이 표시되어 있다. 또 컴퓨터, TV, 비디오엔 에너지절약마크가 붙어 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가전제품을 장만할 때 남편은 항상 뭔가를 눈여겨 찾곤 했다. 내가 디자인이나 기능을 세심히 살필 때 남편은 바로 에너지소비효율등급표시 라벨을, 또 에너지절약마크를 확인했던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남편은 늘 집안에서 전원코드를 살폈고 사용하지 않는 가전제품 전원코드는 어김없이 뽑고 다녔다. 몇 년간 우리 집 전기사용량은 늘 280~290kwh 사이이며 요금은 평균 4만원 선이다. 어떨 땐 항상 꾸준한 전기요금이 신기하기도 했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생활 속의 작은 실천', 바로 그것이었다.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 가전제품에 에너지절약마크가 붙은 가전제품, 또 철저한 코드 뽑기. 그것들로 인해 절약되는 돈은 불과 몇 천 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몸에 밴 남편의 에너지 절약 습관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다.
테이프로 기브스한 선풍기로 여름나기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결국 우리 세 식구는 반쯤 탈난 선풍기로 더위를 식혀야 했다. 고개숙인 선풍기 목은 전기테이프로 단단히 고정시켰고, 그것 때문인지 '턱턱'거리던 기분 나쁜 소리도 자취를 감추었다. 다만 타이머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렇더라도 그리 불편하지 않았음은 아마 '이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옛말 때문인 듯하다. 이제 가을이다. 언제 그렇게 더웠나 싶다. 이제 추억으로 남은 지난 여름. 지독히도 더웠던 그 계절을 이겨내느라 무던히도 고생한 남편과 딸아이에게 선선한 가을바람을 한 아름 선물하고 싶다. 더불어 이 가을에는 '생활 속의 작은 실천'이라는 굳은 결심으로 또 한 계절을 보내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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