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BTL(Build Transfer Lease)’ 이라는 개념이 뜨고 있다. BTL이란 수익이 나지 않는 공공 시설 건립에 민간자본을 유치해 정부의 재정 부담을 줄이고 서민이나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업이다.
이미 영국이나 호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학교나 사회복지시설, 문화 시설 등에 민간자본을 유치해 중앙정부의 재정부담을 줄이면서도 지역사회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는 방식이다.
예컨대 100억짜리 학교 하나를 짓는다고 할 때, 지금은 거액의 예산을 확보하느라 몇 년씩 허비하기 일쑤지만, BTL을 활용하면 민간기업으로부터 자본을 끌어들여 당장 공사에 들어간 뒤 원금과 이자를 차차 갚아나가면 된다. 대신 기업에는 국채수익률+0.5%의 수익을 보장해준다.
정부는 “현행 방식으로는 30년 이상 된 초중등학교 교사(校舍)를 증개축하는데 20년 이상 걸리지만 BTL투자를 활용할 경우 이를 훨씬 앞당길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학교 뿐 아니라 아동보육시설, 노인복지시설, 임대주택, 박물관, 공공도서관 등 시급한 공공시설을 빠르게 확충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또 정부의 재정운영방식의 탄력성을 높이고, 민간 유휴자금을 장기 공공투자로 전환하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정부는 밝히고 있다.
이에 기획예산처가 총 24조원 규모의 BTL 사업에 책정하고 민간 자본을 유치하는데 나서자,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이 사업에 대한 찬반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반대하는 쪽은 정부가 민간자본에 매년 ‘국채수익률 플러스 0.5%’의 금리를 보장함으로써 건설사들과 금융사들에게 절대 이윤을 보장해 주는 사업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자칫 민간 기업의 배만 불릴 공산이 있다는 것이다. 또 정부가 당초 이 제도를 ‘건설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 등 수익개념에 치중해 도입했기 때문에, 복지시설 등의 운영에 관심을 기울이는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문제도 지적하고 있다.
기업은 기업대로 BTL 사업 참여에 소극적이다. 수익이 나지 않는 기관의 운영비를 20년 동안 정부가 보전해주기 때문에 일단 사업을 맡게 되면 고정적인 수익이 보장되지만, 그럼에도 기존 민자사업과 달리 운영비나 설계비의 산출이 까다로운 데다 입찰에 참여하기 위한 기본 사업비가 엄청나기 때문에 기업들의 참여가 저조한 형편이다.
반면 이 사업이 공공복지시설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서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바로 사회책임경영연구소 최용관 컨설팅 본부장이 대표적이다. |
”비판만하는 시민단체보다 참여하고 바꾸는 시민단체가 필요한 때” “일부 시민단체에서 지적하는 과정상의 문제점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고 아예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한다거나, 성명서나 발표하면서 비판만 한다면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미 24조원이라는 국민 세금이 책정된 사업입니다. 국가가 제대로 쓰는지 감시하고 제도의 올바른 운영을 위해 참여하는 것이 시민단체의 제대로 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처럼 사회적 기업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BTL 유치 성공 사례가 한 건도 없을 정도로 지지부진하다. 결국 BTL 사업의 성패는 전문성 있는 시민단체의 관심과 참여로 사업이 얼마나 활발하게 진행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 최 본부장의 결론이다.
가장 먼저 그가 추진하는 BTL 사업은 노인복지 시설이다. 인구에 비해 노인요양시설이 부족한 31개 지자체들에 민간자본으로 짓는 노인요양시설 건설을 추진하는 것이다. 일단 한 지역에서 민간자본과 지역 대학 등이 건설과 운영에 참여하는 복지시설 설립을 성공시킨 다음 동일한 모델을 전국으로 확신시킨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미국 같은 곳은 지역재투자법처럼 복지시설이나 수익이 나지 않는 곳에 투자를 강제하는 법이 있기 때문에 공공복지시설에 많은 투자가 이뤄지는데 우리는 금융의 공공성을 강제하는 제반 법규가 없기 때문에 민간투자법만 있을 뿐이지 실효성 있는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 않는 상황이에요. 게다가 지금 민간자본은 계산기만 두들길 뿐이지 복지시설 운영에는 관심이 없거든요. 제가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시민단체나 대학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그들이 적합한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어떻게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할 것인가이지요.”
여의도에 있는 사회책임경영연구소는 국내 금융과 관련한 국내 유일의 시민단체. 컨설팅본부장을 맡고 있는 최용관씨는 인터넷업체 와우프리 대표를 역임했던 기업가 출신이다. 기획예산처에서 하고 있는 BTL 사업을 활용, 복지 시설이 부족한 지자체에 인프라를 공급 하고 건설사, 금융사, 지자체, NGO 등의 참여와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그의 몫이다.
“도덕적인 기업이 수익도 높다”  | | BTL 사업 외에도 최 본부장은 금융자본의 감시를 통한 주주운동부터 기업 감시까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감시하는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이미 은행들의 지역사회 재투자를 강제하는 CRA(지역재투자)법이 있고, CRA 등급을 감시하는 시민단체가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또 사회책임투자(SRI)펀드를 만들어 환경, 인권, 복지 등 공공분야에 기여하는 기업들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사업까지 다채로운 방향으로 자본 감시가 이뤄지고 있어요. 스타벅스의 이스라엘 무기 지원사업을 지적한 한 시민단체가 스타벅스 불매운동을 벌인다거나 스타벅스 주식을 사서 경영 방향에 간섭하는 것 등이 익숙한 예지요.”
특이한 것은, 기업의 수익성보다도 공익성을 고려해 투자금액을 결정하는 SRI(Socially Responsible Investing) 펀드의 수익이 일반 펀드의 수익보다도 높다는 것. 이 같은 사실은 사회책임투자펀드를 옵션으로 제공하는 미국의 각종 사회 기금들이나 뮤추얼 펀드의 수익률이 해당업종의 주가수익률을 능가한다는 결과로 나타난다. 모순으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투자하는 방식이 수익을 올리는 것뿐 아니라 사회를 공평하고 정의롭게 하는데도 영향을 준다는 점이 입증된 셈이다.
“노동자를 착취하고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 비도덕적인 기업들일수록 이윤을 많이 낼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이는 기업의 수익성과 공익성이 동반될 수 있다는 얘기에요. 즉 투자의 방식이 사회와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거에요.“
그는 “우리나라에 SRI펀드가 만들어진다면 삼성 같은 기업은 투자 대상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 같은 대기업들은 이윤추구에는 철저하지만 그만큼 사회 복지 사업 등에 투자해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노조는 인간의 기본권이며, 기본인권을 무시하는 회사가 복지사업을 한다는 것은 기만행위”라고 했다.
“나이키 같은 기업들이 동남아나 아프리카의 아동 인력을 착취해 돈을 벌지 않습니까. 그렇게 번 돈으로 미국의 동네마다 아동복지시설을 지어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조금 심하게 말하면 삼성 같은 기업이 윤리기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나이키의 행태와 다를 바가 없다는 거지요.”
그는 또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회사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기 힘들다”면서 “고용 관계를 재고물품 반납하듯 손쉽게 끊어버리는 회사들이 많은데 그런 방식이 단기적으로는 회사의 이윤을 높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회사가 우수 인력과 함께 동반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수익성과 공익성이 동반할 때만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회활동가 최용관 본부장. 그의 야심이 공공복지 사업과 자본의 행복한 결합을 얼마나 이뤄낼 수 있을지, 그리고 그 결과로 사회의 그늘진 곳의 약자들의 삶의 질이 얼마나 높아질 것인지. 범상치 않은 그의 행보를 주시해봐야 하는 이유다.
 최용관 본부장은 누구? 삼성 노조 조직하려다 해고, 문화기획사 ‘청년’ 설립해 수억대 매출 이윤은 재투자한다는 철학 그 때부터 실천 최 본부장은 고교 시절부터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그의 인생 역정을 살펴보면 한 편의 드라마가 따로 없을 정도다.
87년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성 SDI에 입사했던 최씨는 이후 노조를 조직하려다 회사의 갖은 탄압을 받았다. 최근 문제가 불거졌던 삼성 SDI 직원들의 휴대폰 위치 추적 논란보다 당시 회사측의 탄압은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였다고. 회사 측의 탄압을 꿋꿋하게 버텨낸 그에게 회사 측은 이번에는 거액의 위로금으로 퇴사를 권유했다.
“당시 돈으로 1억 4000만원을 준다고 했으니까, 강남 아파트 값이 5000만원이 안 될 때였어요. 지금이라면 좀 고민을 해 봤을 수도 있는데(웃음). 당시에는 가슴도 뜨겁고 어렸을 때였으니까 단호하게 거절했죠. 결국 그냥 ?겨나고 말았지만요.”
그 후 그는 7번이나 회사를 그만두는 수난을 겪는다. “삼성에서 요주의 인물로 찍히면 순탄하게 회사 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먹고 살려고 여러 번 직장에 적응하려고 했지만 가만히 두지를 않더군요. 그래서 결국 사업을 할 수 밖에 없었죠.”
문화기획사 ‘청년’을 설립한 그는 시민단체, 노동단체, 대학 등의 전단지 인쇄, 팜플렛 작성, 출판, 공연 사업 등을 도맡아 그 분야에서는 탄탄한 자리를 굳혔다. ‘품질경영’을 고집한 그는 수억대 매출을 올리는 성공가도를 달리기도 했다.
“다른 업체보다 더 빠르게, 더 예쁜 디자인으로, 더 싸게 일처리를 한다는 3가지 원칙을 지켰을 뿐이에요. 영업 한 번 하지 않았는데도 수백 개 거래처들이 알아서 찾아 왔을 정도니까요. 고객에게 신뢰를 준 것이 주효했죠. 이익이 나면 반드시 시민사회단체나 대학에 재 투자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어요. 컴퓨터나 사무기기 등을 지원했었죠.”
이미 그 시절부터 비즈니스는 철저히 하되 고객으로부터 얻는 이익을 재투자한다는 경영 철학을 몸소 실천했던 셈. 그랬던 그가 사업을 접고 사회책임경영연구소에 합류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청년’ 이후 그가 한 사업은 인터넷 기업 와우프리. 값비싼 소프트웨어를 살 수 없는 중소기업이나 개인들에게 ‘대여’ 개념으로 셰어웨어를 공유하도록 하는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정보와 기술을 공유하는 ‘카피레프트’ 정신을 살리면서도 기술개발업체들에게도 수익모델이 되는 윈-윈사업이었던 셈.
“한 때는 사업이 잘 돼서 1억이 넘는 현찰을 가방에 끌고 다녀본 적도 있고요. 어떤 때는 통장에 단 몇 백원만 남아있을 때도 있었어요. 그래선지 전 돈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비즈니스를 할 때는 정확하고 계산적으로 해야 하지만, 비즈니스를 통해 얻은 수익으로 어떻게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것인가도 더 중요한 관심사니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