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터넷 강국인가"...안철수, 또 다시 쓴소리
우리나라 IT 산업에 대한 안철수 사장의 쓴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이번에는 '인터넷 강국의 허상'을 꼬집었다.

안철수 사장은 7일 안철수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린 칼럼에서 "인터넷 인프라를 구성하고 있는 장비들이 거의 대부분 외국산이며 국내 기술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는 점을 꼬집고 '과연 우리가 인터넷 강국인가'라는 도전적인 질문을 던졌다.

질문에 대한 자신의 대답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 안 사장은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이외에 우리가 인터넷 강국이라고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안 사장은 "속도가 빨라지고 용량이 커질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하다. 장비뿐만이 아니라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거의 대부분이 외국산"이라며 "심하게 표현하자면 우리는 인터넷 망을 설치하고 운영하고 있을 뿐, 외국 회사들에게 돈을 벌어주는 거대한 시장 노릇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인터넷 강국이 아니라 '인터넷 소비 강국'일 뿐 이라는 뼈 아픈 질책인 셈이다.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등 인프라 뿐 아니라, 콘텐츠의 경쟁력도 세계 수준과는 한참 떨어졌다고 안 사장은 주장했다.

인터넷 콘텐츠는 인터넷이 생긴 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가지고 있던 오프라인 콘텐츠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들어, 오프라인 콘텐츠가 부족한 우리의 실정에 우려를 나타낸 것.

또 게임, 채팅, 음란물, 동영상 교환 등 소비하고 즐기는 일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의 인터넷 사용행태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안 사장은 "소비문화가 나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창조적인 측면과 소비적인 측면이 같이 균형 있게 자리 잡아야 하는데, 한 쪽으로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 사장은 끝으로 "세계 1위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질 만 하지만,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컨텐츠, 사용 행태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들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며 "우리는 샴페인을 터트리거나 자만할 때가 아니라, 아직도 모자라는 점이 많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안철수 사장의 칼럼 전문.

<우리는 진정한 인터넷 강국인가?>

재작년 세계경제포럼, 일명 다보스 포럼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다보스 포럼은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듯이, 세계 각국의 영향력 있는 정치 지도자,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유명한 경영자, 학자, 언론인 등이 한 곳에 모여서 여러 가지 현안문제에 대해서 심도 있는 논의를 하는 장입니다. 여기서 논의된 내용들이 세계경제의 방향을 잡는 큰 틀을 제시함은 물론이며, 시간과 공간상의 제약으로 서로 만나기 힘든 유력 인사들이 한꺼번에 한 장소에 모여서 개인적인 친분을 나누고 정보를 교류하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모임의 형식도 다양하여, 청중들이 일방적으로 전문가들의 토론을 듣는 경우도 있지만, 식사를 하면서 테이블별로 주제를 논의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가 참여한 모임 중에는 IT 산업 불황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저녁 모임이 있었는데, 주제가 주제인 만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고위 임원을 비롯하여 각국의 많은 오피니언 리더들이 참석했습니다. 테이블별 논의가 끝난 후에는 각 테이블마다 한 사람씩 앞에 나와서 발표를 하고 모두 같이 토의하는 순서로 진행됐습니다.

놀라왔던 점은 거의 절반에 가까운 테이블에서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 1위이며, 2위와의 격차도 엄청나게 벌어져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었으며, IT 불황을 타계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한국의 사례를 잘 연구하여 적용하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가슴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세계 각국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고, 우리도 이제는 뭔가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왔다는 자부심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흥분의 시기가 지나가면서, 다시 한 번 더 냉정하게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진정한 인터넷 강국인가?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이외에도 앞서 있는 것이 있는가? 저는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선 우리나라의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를 구성하고 있는 장비들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외국산이며, 국내 기술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속도가 빨라지고 용량이 커질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합니다. 장비뿐만이 아닙니다.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거의 대부분이 외국산입니다. 심하게 표현하자면 우리는 인터넷 망을 설치하고 운영하고 있을 뿐, 외국 회사들에게 돈을 벌어주는 거대한 시장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인프라이외에 컨텐츠 분야도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저는 유학 시절에 미국의 컨텐츠 경쟁력을 실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사를 마친 후 우연히 서점에 들렀는데, 서점 한 구석에 그 도시에 정착하는 방법에 대한 책이 빼곡히 차있었습니다. 집을 구하는 방법, 주요 관공서의 위치, 각종 물품을 싸게 사는 방법 등 처음 그 도시에 정착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각종 정보들이 책으로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도시에 가보아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정착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정보들이 정리되어 책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9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이렇게 풍부한 오프라인 컨텐츠들이 인터넷 컨텐츠로 변모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제게는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인터넷 컨텐츠는 인터넷이 생긴 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오프라인 컨텐츠가 커다란 경쟁력을 제공해준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기록 문화가 미흡하고 오프라인 컨텐츠가 부족한 우리의 실정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의 사용 행태도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인터넷 사용시간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지만, 내용 면에서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생성하기보다는 소비적인 측면이 주류를 차지합니다. 즉, 게임, 채팅, 음란물, 동영상 교환 등 소비하고 즐기는 일이 인터넷 사용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저는 소비문화가 나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창조적인 측면과 소비적인 측면이 같이 균형 있게 자리 잡아야 하는데, 한 쪽으로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세계 1위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질 만 하지만,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컨텐츠, 사용 행태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부족한 부분들이 아직도 너무나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샴페인을 터트리거나 자만할 때가 아니라, 아직도 모자라는 점이 많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즉, 문제의식을 가지고 우리의 가장 큰 장점인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앞으로 나가야 할 때인 것입니다. 이렇게 전 국민적인 공감대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할 때, 우리가 진정한 인터넷 강국이 될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을 것입니다.

Posted by 퓨전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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