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높은 甲에 대처하는 乙의 자세… 이순신 장군에게 배워라
"난 협상에서 백전백승이야! 아무리 노련한 중소 납품업체 사장들이라도 나한테 걸리면 설설 기어."
대기업의 구매담당인 김교만 이사의 거드름이다. 정말 이런 사람이 유능한 협상가일까? 천만에! 엄청난 자기 착각에 빠져 있다. 그간 협상을 잘한 것은 본인 능력 때문이 아니라 대기업 구매담당이라는 막강한 '간판' 덕분이다. 만약 그가 벤처업체를 차려 대기업에 납품하는 을(乙)의 신세가 되어 협상을 하게 되면 몹시 당황할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갑(甲)으로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불리한 을의 입장에서 도도한 갑과 협상해야 할 때가 많다.
이순신 장군도 그랬다. 그는 을의 입장에서 명나라의 진린(陳璘) 제독과 어려운 협상을 벌여야 했다.
■명나라 장수와 비굴(?)하게 협상한 이순신 장군
"저렇게 성질이 사나운 진린 제독이 남쪽으로 내려가 이순신을 만나면 티격태격하고 난리가 날 것이야. 이를 어쩌지?"
조정 대신들의 근심이 태산 같았다. 임진왜란 막바지에 진린 제독의 함대가 조선을 도우러 오면서 먼저 한양에 들렀는데 소문대로 성격이 흉포했다. 그의 비위를 거스른 조정 대신들이 온갖 수모를 당하고 곤장까지 맞았다. 이렇게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조선 수군과 합류하러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대쪽 같은 성격의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 그를 맞이했을까? 호되게 꾸짖었을까? 천만에! 철저한 을로서 바싹 엎드려 진린 제독을 맞았다. 그는 조선 함대를 이끌고 수십 리 뱃길 마중을 나갔다. "진린, 띵호와!" 아주 만족. '진린 비위 맞추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저녁에 푸짐한 주안상을 차려 융숭하게 접대하고, 왜적의 수급(首級) 수십 개를 '뇌물'로 줬다. 오자마자 첫 승리를 거두었다고 명 황제에게 보고하라고.
'야! 이순신 장군도 별수 없네. 우리가 생각한 그런 훌륭한 분이 아니네.' 만약 이렇게 생각한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가 직장 생활을 하건 사업을 하건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때론 눈앞의 체면이나 자존심을 버리고 을의 입장에서 이순신 장군처럼 협상할 필요가 있다.
장군께서 진린에게 굽실거린 이유는 간단하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다. 조선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왜적을 물리칠 수 없었기에 어떻게든 진린의 비위를 맞춰서 왜적을 함께 몰아내야 한다는, 보다 큰 대의를 위해 자존심을 과감히 접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진린 제독이 장군의 인격에 감복해 자신의 부하들에게 장군보다 한 발자국도 앞서 걷지 말라고 엄명했다. 장군의 지시에 따르라는 뜻이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철저한 을로서 비굴하게라도 협상하는 바로 이런 점이 이순신 장군이 진짜 존경받을 진면목이다.
☞ 甲이 강하게 밀어붙일 땐…
고개 숙이고, 교만케 해 '틈' 만들어라
'以强制强' 기선제압이 먹힐 때도 많아
☞ 甲이 너그럽게 나올 땐…
"한 번 봐달라, 다음에 은혜 갚을게"
동양권엔 통하지만 서양선 '역효과'도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Wharton School)의 리처드 쉘(Shell) 교수에 의하면 여러분이 약한 을의 입장에서 협상할 때라도 너무 주눅 들지 말고 갑인 상대가 아래 세 가지 행동 중 어떻게 나오는가를 유심히 관찰하고 이에 맞는 전략을 짜야 한다. 즉, 상대가 강하게 나올 때는 허점 찌르기(soft signal) 전략이나 기선 제압(hard signal) 전략을, 너그럽게 나올 때는 교환의 법칙(rule of exchange) 전략 또는 백지수표(blank check) 전략을, 자신이 갑인 줄 모를 때는 허풍(bluffing) 전략이 효과적이다.
■전략 1. 허점 찌르기(soft signal) 전략
상대가 우월한 협상력을 바탕으로 여러분을 마구 밀어붙일 때 고개를 숙여 상대를 더욱 강한 갑으로 만들어라. 그러면 갑은 더욱 교만해진다. 그리고 인간은 교만해지면 반드시 허점을 드러낸다. 이때 허점을 공격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다.
우리가 동해안에 원자력 발전소를 지을 때 콧대 높은 프랑스 기술자들 때문에 애를 먹은 적이 있다. 건설 현장에 가족만 입주할 수 있는 외국인 사택이 있었는데, 그들은 거드름을 피우며 동거녀와 마구 입주했다. 을인 한전은 이를 모른 척하고 묵인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전은 사장의 특별 지시라며 혼인 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증명서를 제출하든지 아니면 당장 나가라고 태도를 돌변했다. 그들로선 이것이 본사에 알려지면 큰 망신이다. 졸지에 갑에서 을의 신세로 전락해 계속 입주하기를 애걸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물론 그 다음부터 그들의 태도가 싹 변했다.
■전략 2. 기선 제압(hard signal) 전략
상대가 강하게 나올 때 두 번째 방법은 아예 기선을 제압해버리는 것이다. 1970년대 국내에 조선소를 지을 때 일본의 한 조선업체에서 파견 나온 일본인 기술자가 뺀질거리며 기술 이전을 기피했다. 간부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고, 당시 CEO가 갑자기 일본 말로 이 일본인 기술자에게 엄청나게 모욕적인 언사를 마구 퍼부었다.
'아, 이제 조선소 다 지었구나!' 이 자리에 있던 간부들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 기술자는 졸지에 본사로 소환당했다. 화합을 중시하는 일본 기업 문화에서 보면, 외국으로 파견한 기술자가 한국인과 잘 지내지 못하고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킨 것이다.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이 CEO는 이 같은 일본 문화를 미리 알고 잘 계산된 기선 제압 전략을 쓴 것이다. 그렇다면 교체되어온 일본 기술자의 태도는 어땠을까? 괜히 한국인과 마찰을 일으키면 전임자 꼴이 될 게 뻔하기에 아주 협조적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때 조선 도우러 온 明 장수 진린… '대쪽' 이순신 장군, 의외로 바싹 엎드려
융숭한 대접에 뇌물 주며 '비위 맞추기'… 반발 예상했다 허 찔린 明 장수 감복해…
"큰 뜻 위해선 체면 죽이고 전략 살려라"
■전략3. 교환의 법칙(rule of exchange) 전략
상대가 너그럽게 나올 때의 협상 전략이다. 쉽게 말해 이번에 봐주면 언젠가는 보답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은 특히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의 협상 문화에서 잘 통한다.
필자가 공직에 있을 때 한일 슈퍼 엑스포 관계로 일본의 통상산업성의 A과장과 서울~도쿄를 오가며 협상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일본에 가서 "어려운 부탁을 하나 들어 달라"고 인간적으로 호소한 적도 있다. 이거 해결 못 하고 귀국하면 장관한테 깨진다고. 그런데 의외로 그가 선뜻 부탁을 들어줬다. 동양에서는 상대와의 관계를 길게 보는 교환의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몇 달 후 그가 서울에 와 어려운 부탁을 했을 때 필자는 물론 들어줬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번에 한번 봐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심해야 할 점은 이 같은 전략이 미국 등 서양인과의 협상에서는 안 통한다는 점이다. 단기적인 협상 성과에만 관심이 있는 그들에게 "한번 봐달라"라고 부탁하면 자신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것이고, 상대는 그 약점을 집중 공격해 협상에서 얻을 수 있는 당장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려고 할 것이다.
■전략4. 백지수표(blank check) 전략
쉘 교수에 의하면 서로 마음을 터놓고 협상을 하면 윈윈(win-win) 게임을 할 수 있는데도, 지레 겁을 먹고 을로서 양보하려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자신이 을임을 솔직히 인정하고(절대 자신의 양보 카드를 먼저 내밀지 말고), 갑에게 선처를 부탁하는 '백지수표' 전략을 쓰면 예상 외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맹소심 부장이 미국에 출장 가서 100달러짜리 만년필을 샀다. 그런데 마음에 안 들어 다시 가게로 갔다. 이미 잉크를 묻혀 놓았기에 미안한 마음에서 환불 대신 100달러 상당의 교환권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 가게에서 다른 100달러짜리 물건을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점원이 퉁명스럽게 "노(no)"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순간 따지려고 하다가 마음을 바꿔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냐"라며 '백지수표'를 던졌다. 그런데 의외로 상대는 "요금 환불(cash back)"이라면서 10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주었다. 알고 보니 소비자의 천국인 미국에서 판매업자는 그 만년필을 제조업체에 반납해 버리면 된다. 즉 소비자와 만년필 가게로선 가볍게 윈윈 할 수 있는 협상 상황이었던 것이다.
■전략5. 허풍(bluffing) 전략
상대가 정보 부족 등의 이유로 자신이 갑이면서도 갑인지 모를 때 써먹는 전략이다. 을이면서도 일부러 강하게 나가며 허세를 부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다.
강허세 사장이 중고 방적기를 팔려고 시장에 내놓았는데, 1년이 지나도 문의 전화가 한 통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동남아시아에서 나꺼벙씨가 찾아와 구매 의사를 강하게 표시하였다. 눈치를 보니 방적기 시장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즉 자신이 갑인지 모르는 것이다.
이를 간파한 강허세 사장은 방적기를 사려는 수요자들이 많이 있는 것처럼 블러핑을 해 높은 가격에 팔아 치웠다.
하지만 노련한 상대에게 섣불리 써먹으려다간 큰 코 다칠 수 있다. 상대를 잘 관찰하고 확신이 설 때 블러핑 카드를 내밀어야 한다.
乙로서 협상할때 성공 전략 5계명
1 을이라고 지레 겁먹고 상대에게 설설 기지 마라.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잘 살펴보고 이에 맞는 협상 전략을 써라.
'성공 불도저' 왕회장, 왜 M&A 협상만 번번이 실패할까 한치 양보없는 협상 성공하려면… 협상의 고수가 되려면… 상대의 감성부터 건드려라 1등 되고픈 만년 2등, 외국회사와 손잡고 싶은데… 벤처 나순진 사장에게 필요한 회사 매각 협상기술
"난 협상에서 백전백승이야! 아무리 노련한 중소 납품업체 사장들이라도 나한테 걸리면 설설 기어."
대기업의 구매담당인 김교만 이사의 거드름이다. 정말 이런 사람이 유능한 협상가일까? 천만에! 엄청난 자기 착각에 빠져 있다. 그간 협상을 잘한 것은 본인 능력 때문이 아니라 대기업 구매담당이라는 막강한 '간판' 덕분이다. 만약 그가 벤처업체를 차려 대기업에 납품하는 을(乙)의 신세가 되어 협상을 하게 되면 몹시 당황할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갑(甲)으로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불리한 을의 입장에서 도도한 갑과 협상해야 할 때가 많다.
이순신 장군도 그랬다. 그는 을의 입장에서 명나라의 진린(陳璘) 제독과 어려운 협상을 벌여야 했다.
■명나라 장수와 비굴(?)하게 협상한 이순신 장군
"저렇게 성질이 사나운 진린 제독이 남쪽으로 내려가 이순신을 만나면 티격태격하고 난리가 날 것이야. 이를 어쩌지?"
조정 대신들의 근심이 태산 같았다. 임진왜란 막바지에 진린 제독의 함대가 조선을 도우러 오면서 먼저 한양에 들렀는데 소문대로 성격이 흉포했다. 그의 비위를 거스른 조정 대신들이 온갖 수모를 당하고 곤장까지 맞았다. 이렇게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조선 수군과 합류하러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대쪽 같은 성격의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 그를 맞이했을까? 호되게 꾸짖었을까? 천만에! 철저한 을로서 바싹 엎드려 진린 제독을 맞았다. 그는 조선 함대를 이끌고 수십 리 뱃길 마중을 나갔다. "진린, 띵호와!" 아주 만족. '진린 비위 맞추기'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저녁에 푸짐한 주안상을 차려 융숭하게 접대하고, 왜적의 수급(首級) 수십 개를 '뇌물'로 줬다. 오자마자 첫 승리를 거두었다고 명 황제에게 보고하라고.
'야! 이순신 장군도 별수 없네. 우리가 생각한 그런 훌륭한 분이 아니네.' 만약 이렇게 생각한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가 직장 생활을 하건 사업을 하건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때론 눈앞의 체면이나 자존심을 버리고 을의 입장에서 이순신 장군처럼 협상할 필요가 있다.
장군께서 진린에게 굽실거린 이유는 간단하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다. 조선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왜적을 물리칠 수 없었기에 어떻게든 진린의 비위를 맞춰서 왜적을 함께 몰아내야 한다는, 보다 큰 대의를 위해 자존심을 과감히 접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진린 제독이 장군의 인격에 감복해 자신의 부하들에게 장군보다 한 발자국도 앞서 걷지 말라고 엄명했다. 장군의 지시에 따르라는 뜻이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철저한 을로서 비굴하게라도 협상하는 바로 이런 점이 이순신 장군이 진짜 존경받을 진면목이다.
☞ 甲이 강하게 밀어붙일 땐…
고개 숙이고, 교만케 해 '틈' 만들어라
'以强制强' 기선제압이 먹힐 때도 많아
☞ 甲이 너그럽게 나올 땐…
"한 번 봐달라, 다음에 은혜 갚을게"
동양권엔 통하지만 서양선 '역효과'도
- ▲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ps@chosun.com
■전략 1. 허점 찌르기(soft signal) 전략
상대가 우월한 협상력을 바탕으로 여러분을 마구 밀어붙일 때 고개를 숙여 상대를 더욱 강한 갑으로 만들어라. 그러면 갑은 더욱 교만해진다. 그리고 인간은 교만해지면 반드시 허점을 드러낸다. 이때 허점을 공격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다.
우리가 동해안에 원자력 발전소를 지을 때 콧대 높은 프랑스 기술자들 때문에 애를 먹은 적이 있다. 건설 현장에 가족만 입주할 수 있는 외국인 사택이 있었는데, 그들은 거드름을 피우며 동거녀와 마구 입주했다. 을인 한전은 이를 모른 척하고 묵인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전은 사장의 특별 지시라며 혼인 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증명서를 제출하든지 아니면 당장 나가라고 태도를 돌변했다. 그들로선 이것이 본사에 알려지면 큰 망신이다. 졸지에 갑에서 을의 신세로 전락해 계속 입주하기를 애걸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물론 그 다음부터 그들의 태도가 싹 변했다.
■전략 2. 기선 제압(hard signal) 전략
상대가 강하게 나올 때 두 번째 방법은 아예 기선을 제압해버리는 것이다. 1970년대 국내에 조선소를 지을 때 일본의 한 조선업체에서 파견 나온 일본인 기술자가 뺀질거리며 기술 이전을 기피했다. 간부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고, 당시 CEO가 갑자기 일본 말로 이 일본인 기술자에게 엄청나게 모욕적인 언사를 마구 퍼부었다.
'아, 이제 조선소 다 지었구나!' 이 자리에 있던 간부들의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 기술자는 졸지에 본사로 소환당했다. 화합을 중시하는 일본 기업 문화에서 보면, 외국으로 파견한 기술자가 한국인과 잘 지내지 못하고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킨 것이다.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이 CEO는 이 같은 일본 문화를 미리 알고 잘 계산된 기선 제압 전략을 쓴 것이다. 그렇다면 교체되어온 일본 기술자의 태도는 어땠을까? 괜히 한국인과 마찰을 일으키면 전임자 꼴이 될 게 뻔하기에 아주 협조적이었다고 한다.
임진왜란때 조선 도우러 온 明 장수 진린… '대쪽' 이순신 장군, 의외로 바싹 엎드려
융숭한 대접에 뇌물 주며 '비위 맞추기'… 반발 예상했다 허 찔린 明 장수 감복해…
"큰 뜻 위해선 체면 죽이고 전략 살려라"
■전략3. 교환의 법칙(rule of exchange) 전략
상대가 너그럽게 나올 때의 협상 전략이다. 쉽게 말해 이번에 봐주면 언젠가는 보답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략은 특히 관계를 중시하는 동양의 협상 문화에서 잘 통한다.
필자가 공직에 있을 때 한일 슈퍼 엑스포 관계로 일본의 통상산업성의 A과장과 서울~도쿄를 오가며 협상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일본에 가서 "어려운 부탁을 하나 들어 달라"고 인간적으로 호소한 적도 있다. 이거 해결 못 하고 귀국하면 장관한테 깨진다고. 그런데 의외로 그가 선뜻 부탁을 들어줬다. 동양에서는 상대와의 관계를 길게 보는 교환의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몇 달 후 그가 서울에 와 어려운 부탁을 했을 때 필자는 물론 들어줬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번에 한번 봐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심해야 할 점은 이 같은 전략이 미국 등 서양인과의 협상에서는 안 통한다는 점이다. 단기적인 협상 성과에만 관심이 있는 그들에게 "한번 봐달라"라고 부탁하면 자신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것이고, 상대는 그 약점을 집중 공격해 협상에서 얻을 수 있는 당장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려고 할 것이다.
■전략4. 백지수표(blank check) 전략
쉘 교수에 의하면 서로 마음을 터놓고 협상을 하면 윈윈(win-win) 게임을 할 수 있는데도, 지레 겁을 먹고 을로서 양보하려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자신이 을임을 솔직히 인정하고(절대 자신의 양보 카드를 먼저 내밀지 말고), 갑에게 선처를 부탁하는 '백지수표' 전략을 쓰면 예상 외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맹소심 부장이 미국에 출장 가서 100달러짜리 만년필을 샀다. 그런데 마음에 안 들어 다시 가게로 갔다. 이미 잉크를 묻혀 놓았기에 미안한 마음에서 환불 대신 100달러 상당의 교환권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 가게에서 다른 100달러짜리 물건을 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점원이 퉁명스럽게 "노(no)"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순간 따지려고 하다가 마음을 바꿔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냐"라며 '백지수표'를 던졌다. 그런데 의외로 상대는 "요금 환불(cash back)"이라면서 10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주었다. 알고 보니 소비자의 천국인 미국에서 판매업자는 그 만년필을 제조업체에 반납해 버리면 된다. 즉 소비자와 만년필 가게로선 가볍게 윈윈 할 수 있는 협상 상황이었던 것이다.
■전략5. 허풍(bluffing) 전략
상대가 정보 부족 등의 이유로 자신이 갑이면서도 갑인지 모를 때 써먹는 전략이다. 을이면서도 일부러 강하게 나가며 허세를 부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다.
강허세 사장이 중고 방적기를 팔려고 시장에 내놓았는데, 1년이 지나도 문의 전화가 한 통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동남아시아에서 나꺼벙씨가 찾아와 구매 의사를 강하게 표시하였다. 눈치를 보니 방적기 시장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즉 자신이 갑인지 모르는 것이다.
이를 간파한 강허세 사장은 방적기를 사려는 수요자들이 많이 있는 것처럼 블러핑을 해 높은 가격에 팔아 치웠다.
하지만 노련한 상대에게 섣불리 써먹으려다간 큰 코 다칠 수 있다. 상대를 잘 관찰하고 확신이 설 때 블러핑 카드를 내밀어야 한다.
乙로서 협상할때 성공 전략 5계명
1 을이라고 지레 겁먹고 상대에게 설설 기지 마라.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잘 살펴보고 이에 맞는 협상 전략을 써라.
- ▲ 서강대 교수·글로벌협상센터소장
2 을로서 협상한다고 절대 자존심 상해하지 마라. 이순신 장군도 큰 것을 얻기 위해 비굴하게 협상했다. 오히려 상대를 교만하게 만들어 이를 역이용하라.
3 우리나라와 같이 학연, 지연, 거래처를 중시하는 사회에선 교환의 법칙 전략도 잘 통한다. 한 가지 명심할 점은 이런 방식이 일본인이나 중국인에겐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서양인에게는 절대 금물이다.
4 을임을 솔직히 인정하고 상대의 선처를 호소하는 '백지수표'를 던져라. 의외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5 비즈니스 협상을 하다 보면 상대가 갑인데도 정보가 부족해 자신이 갑인지 모를 때가 많다. 이럴 때는 허풍 전략을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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