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로 가는 7가지 성공법칙(상)


[머니투데이 박창욱기자][[창간특집]CEO들의 사원 시절..'배우는 자에게 미래가 있다' 등]

【편집자주】머니투데이는 2001년 오프라인 신문 창간 당시부터 기업 일선에서 땀흘리고 있는 최고경영자(CEO)들의 열정과 꿈을 지면에 담아왔습니다.

기업 CEO들은 각자 분야에서 남다른 노력으로 현재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불안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사회 초년병 시절이 있었습니다. '햇병아리' 시절에서 간부를 거쳐 경영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CEO들이 어떤 마음가짐과 행동방식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해 2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CEO들이 가진 긍정적인 삶의 방식에서 평범하지만 특별한 '성공의 해법'을 체득하시기 바랍니다.

[CEO로 가는 7가지 성공법칙]

- 배우는 자에게 미래가 있다
- 안주하지 말고 항상 도전하라
- 일 자체에 충실하라
- 꿈꾸는 자 이루리라
-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 한 우물을 파라
- 궂은 자리를 마다하지 마라

▶배우는 자에게 미래가 있다

"오늘 배우지 아니하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올해 배우지 아니하고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주자가 남긴 가르침이다. CEO들은 사원시절부터 간부가 될 때까지 항상 자기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CEO가 되고 나서도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혔다. 그렇게 익히고 준비한 지식과 경험으로 큰 책임을 맡았을 때 이를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


"시간이 없어 자기계발을 못 한다는 이야기는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유상옥 코리아나화장품 회장의 일갈이다. 그는 1959년 고려대를 졸업하고 동아제약 공채 1기로 입사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지식의 깊이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직장 생활 틈틈히 공인회계사 시험준비를 했고, 입사 3년째 되던 61년 합격했다.

유 회장은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않은가'라는 공자의 말씀을 되새기며 항상 뭔가를 배우려고 노력했다. 66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바쁜 일과속에서 학교에 나가 강의도 했다.

그 뒤 회사일이 너무 바빠 공부를 잠깐 미뤄 뒀다가, 나이 오십이 다 되서 박사학위도 취득했다. 박사학위를 준비하면서 그가 닦았던 이론적 기반은 실제 회사경영에도 큰 보탬이 됐다.

그는 '방문판매에 관한 마케팅'으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이는 전문경영인으로서 활동을 접고 그가 코리아나화장품을 창업했을 때, 후발주자의 한계를 뛰어넘는 강력한 영업조직을 구축하는 데 있어 이론적 바탕이 됐다. 덕분에 창업 5년만에 코리아나화장품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화장품업체로 도약할 수 있었다.


조인수한국피자헛 대표의 청년시절은 고달펐다. 모두가 살기 힘들던 1971년, 조 대표는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을 따라 브라질로 이민 을 떠났다.

옷 공장과 식품 가게를 전전해야 고달픈 생활의 연속이었다. 이민간 지 2년만에 중공업 회사에 취직했다. 회사생활을 하며 학업을 병행했다.

그런 노력덕분에 매니저로 승진도 했다. 결혼해 아이도 생겼다. 당시 29살이었다.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해진 그 시점이던 1982년, 그는 미국 시카고대학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입학했다.

조 대표는 "나 자신에게 좀 더 투자하고 싶었다. 영어를 배우고 글로벌 기준에 맞는 지식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졸업후 그는 프록터앤갬블(P&G) 등 여러 글로벌 기업에서 경험을 쌓으며 경영자로 도약할 수 있었다.

조 대표는 사회 후배들에게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오리가 물 위에서 잔잔히 떠다니는 것같지만, 물속에선 바쁘게 갈퀴를 젓고 있습니다. 사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고경영자(CEO)가 되기 위해선 실속있는 자기계발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여기서 '실속'이란 자기가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고민을 통해 자기 장점을 잘 살려가야 합니다."


한국마이크로소프트(한국MS)의 유재성 사장은 외국계 기업 CEO로는 드물게 '대리'로 입사해 사장까지 잔계단을 밟아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1994년 입사해 11년만인 사장이 된 초고속 승진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유 사장은 한양대를 졸업하고, LG전자에 근무하다 한국MS로 자리를 옮겨 지금에 이르렀다. 대부분 다국적기업 CEO들이 다른 외국계 회사를 다녔거나 해외 유학파들인 것과 비교하면 이색적인 경력.

유 사장의 좌우명은 바로 논어에 나오는 '학이시습(學而時習)'이다. 돱인생은 끊임없는 배움의 연속입니다. 늘 배워 새로워지지 않으면 발전이 없습니다.돲 그의 성공원천을 짐작케 하는 좌우명이다.

▶안주하지 말고 항상 도전하라

지그 지글라는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CEO들은 사원 시절부터 속칭 '편한 보직'이나 '안정된 직장'에서 안주하지 않았다. 월급보다는 자신의 꿈을 향해 위해 뛰었고, 사회적 평판보다는 자신만의 소신에 따라 행동했다. 당장의 이익에만 매달리지 않고 보다 어렵고 큰 목표에 도전했다.


`싸이월드`로 유명한 SK커뮤니케이션즈의 유현오 대표.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들어간 직장은 SK(당시 유공)였다.

좋은 보수가 주어지는 안정적인 최고의 직장이었다. 7년간 일했다. 하지만 크게 변함이 없는 업무에 지쳐갔다.

그룹에서 민간 이동통신사업(현재의 SK텔레콤)을 추진하기 위한 태스크포스팀이 결성됐다. 주위에선 안정적인 회사를 떠나 잘 될지도 모르는 곳에 왜 가냐고 말렸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 통신 등 정보기술(IT) 산업이 미래의 주도산업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동통신 사업 초기, 해외 제휴선들과 함께 일했다. 아무런 노하우없이 제휴선들이 알려주는 대로 편안하게 일하는 것이 싫었다. 과감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미국 미시건 주립대학교에서 텔레커뮤니케이션(Telecommunication)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인터넷 사업과 관련한 다양한 전략기획 업무를 수행했고, 결국 인터넷 분야의 대표적인 경영자로 성장했다.


문화콘텐츠진흥원의 서병문 원장은 공대 출신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에서 연구원으로 10년간 일했다.

집안 어른들의 바람대로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했다. 그러다 삼성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가까운 친척 어른들은 대부분 반대를 했다.

하지만 그는 삼성으로 옮겼다. "경쟁에서 이기면 노력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선배의 조언을 듣고 이직을 결심했습니다."

이후 그는 다양한 문화콘텐츠 관련 사업에서 경험을 쌓았고, 현재 `문화콘텐츠 전도사`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 렌탈기업인 아주렌탈의 반채운 대표. 그는 2002년 아주렌탈에 입사하기 전까지, 공기업계열의 렌탈회사에서 12년간 일했다.

"경리 인사 기획 총무 영업 등 다양한 업무를 했지만, 주어진 일만 했을 뿐이었습니다. 점점 진취적인 생각이 줄어들고 있다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주위의 반대에도 당시 신생기업이었던 아주렌탈로 과감히 이직했다. 그는 항상 `내가 사장이면 어떻게 일할까`를 생각했다. 그 결과, 회사를 업계 선두권으로 키우면서 자신도 입사 2년만에 부장에서 사장으로 성장했다.

▶일 자체에 충실하라

중용(中庸)에 이르길, '군자, 소기위이행 부원호기외'(君子, 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라 했다. 군자는 자신의 처지와 본분에 맞게 행동할 뿐, 그 밖의 것은 바라지 않는다는 의미. CEO들은 일순간의 이득보다는 일 자체를 훌륭하게 해내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런 진지한 태도로 인해 조직의 믿음을 얻었다. 승진은 그 믿음의 부산물일 뿐이었다.


"1989년 사회 생활을 시작면서 지금까지 내 돈을 벌겠다고 마음 먹은 적이 없습니다. 회사만 잘 되면, 내가 하는 일만 잘 된다면 저절로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에 대한 욕심은 부렸어도 돈에 대한 욕심은 결코 부리지 않았습니다."

금융시장의 '뉴 리더' 미래에셋그룹의 핵심 경영자이자 우리나라 최고의 자산운용 전문가 가운데 사람인 최현만 미래에셋증권 사장의 직업관이다.

그는 증권사 입사 8년차가 되던 1996년에 지점장이 됐다. 이듬해 박현주 회장에게 미래에셋 창업 동지로 함께 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전 회장님과 지연도, 학연도 없습니다. 같은 회사에서 근무했지만,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적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지점장으로 일할 당시, 약정고보다는 고객 돈을 불리는 데 열심이었던 저의 모습을 눈여겨 보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미래에셋을 창업하면서 가진 마음가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회사가 잘 돼야 나도 잘 될 수 있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열심히 해서 '남의 돈', 즉 고객의 돈을 많이 벌어줘야 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 다짐들이 성실한 노력으로 이어졌고, 회사가 잘 되면서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CEO라는 지금의 결과로 나타나게 된 것 같습니다."


세계적 조선기업인 현대중공업의 최길선 사장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정작 CEO가 되겠다는 생각을 품어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했다.

대신 일을 잘 해보려는 욕심을 아주 강했다고 했다. "다양한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전공과 관계없는 다른 분야의 일도 많이 배우게 되지요. 이렇게 현장에서 배운 것들이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있어 학교에서 받은 교육보다도 훨씬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최 사장은 우직한 사람이었다. "전 처세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테크닉엔 익숙하지도 않구요. 적을 만들지 않고 모두의 기분만 맞추다간 정말 필요한 일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충돌하는 일이 있더라도, 싫은 소리를 듣는 한이 있어도, 할 일은 해야 합니다. 어차피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하면 됩니다."


국내 최대 가구및 홈인테리어 업체인 한샘의 최양하 부회장은 1979년 한샘에 입사, 1994년부터 지금까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나를 월급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단지 돈을 받기 위해 내 몸을 바쳐 일한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입니까? 반대로 일하는 즐거움, 회사가 커 가는 즐거움, 내 능력이 향상되는 즐거움을 누리는 과정에서 월급도 받는다고 여기면 그 즐거움이 몇 배로 커지지 않겠습니까."

< (하)편에 계속... >
Posted by 퓨전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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