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도 웹 2.0 시대
[조선일보 2007-03-21 09:33]

생활비 등 재무현황 공개 사이버공간서 공유·토론 “휴대폰 요금부터 줄이세요” 네티즌은 댓글 통해 훈수

문=“연봉 2400만원, 30세 예비 아빠입니다. 아파트 전세 5300만원, 평균수입 185만원, 고정지출 165만원, 잔액 20만원…. 사치를 하는 것도 아닌데, 보험 하나 들지 못할 정도로 빠듯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카드빚부터 얼른 갚고, 단기는 2금융권 상품으로, 중기는 적립식 펀드로, 장기는 변액보험으로 설계하는 게 좋겠네요.”

은행이나 증권사 상담 창구에서나 들을 법한 이 대화는, 20~30대 젊은이들이 ‘30대 부자가 온다’라는 인터넷 게시판에서 주고받은 내용의 일부다.

원래 ‘돈’ 얘기는 부모와 자식 간에도 터놓고 말하길 꺼리는 소재였다. 하지만 지금 젊은 세대는 본인의 연봉이며, 생활비·빚·용돈 등 은밀한 가계부 현황을 남들에게 몽땅 공개한다.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재무 상황을 남들에게 낱낱이 보여주면서 새로운 재테크 정보를 생산하고 정보를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참여, 개방, 공유’로 대표되는 ‘웹 2.0’ 열풍이 재테크 풍속도까지 바꾸고 있다. 일명 ‘웹 2.0 재테크’다. 네티즌들은 다른 사람이 올린 가계부 현황을 그저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댓글을 붙여서 적극적으로 충고까지 한다.

포털사이트 ‘네이트닷컴’에 개설된 ‘30대 부자가 온다’ 게시판. 개인 자산 현황을 공개하고 재테크 처방을 묻는 글이 4000건을 넘는다. 게시된 글에는 ‘곧 시집갈 나이인데 장기 저축을 하나 헐고 단기 상품에 가입하라’든가 ‘연봉에 비해 보험료가 너무 많이 나간다’ 등 경험에서 우러나와 귀에 쏙쏙 들어오는 댓글이 수십 개씩 달려있다. 재테크를 잘하고 있는 사람에겐 격려와 찬사가 쏟아진다.

SK커뮤니케이션즈 신희정 과장은 “웹 2.0 시대엔 재산 불리는 일이 더 이상 나와 은행·증권사 직원 간의 비밀이 아니다”라며 “아무 보상이 없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재테크 정보 용량을 무한대로 늘려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주부 윤모(26)씨는 지난해부터 매달 개인 블로그에 한 달 예산과 지출 명세 등을 몽땅 올리고 있다. 가계부를 읽은 네티즌들은 “휴대폰 요금부터 손을 대세요” “저랑 비슷한 수입인데 적금 하나 없는 건 문제네요”라며 뼈아픈 조언들을 쏟아낸다. 윤씨는 “빠듯하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헤프게 쓰는 부분도 많았다”며 스스로를 질책하기 위해서라도 가계부 공개는 계속하겠다고 했다.

네티즌 간의 재테크 지식 공유가 활발해지는 데엔 프로를 뺨치는 일반인(일명 ‘프로추어’)들도 한몫 한다. 회사원 정민철(32)씨는 지난 2004년부터 싸이월드를 통해 ‘처제들에게 알려주는 재테크’란 인터넷 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지금 5000만원이 있다면?’ ‘연말정산 준비하기’ 등 실생활에 필요한 주제가 많아 네티즌들의 동참 욕구를 자극한다.

방문자 수는 지금까지 2만여 명. 정씨가 발행하는 인터넷 신문을 구독 중인 이강희(35)씨는 “혼자 재테크 책 보고 공부하는 것보다 실제 사례를 접하니까 피부에 더 와 닿는다”고 했다.

재테크 서적을 출판하는 기획자들도 인터넷 공간의 ‘지하 고수(高手)’ 중에 필자를 물색한다. 출판사 ‘스마트비즈니스’의 전용준 대리는 “요즘은 누가 먼저 사이버 공간에 숨어있는 재테크 고수들을 찾아내는지에 성공이 달렸다”라고 했다.

물론 넘쳐흐르는 정보의 옥석을 가리지 못하면 재(財)테크 아닌 재(災)테크가 될 수도 있다. 이화여대 함인희 교수는 “인터넷에는 거짓 정보도 많다”며 “정보를 맹신(盲信)하지 말고 선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은 기자 diva@chosun.com]


[정철환 기자 ploma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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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퓨전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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