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7년 전 결혼할 때 세 가지 약속을 했다. 첫째, 거실에 소파를 두지 않는다. 둘째, 텔레비전을 사지 않는다. 그리고 셋째, “서재를 거실에 만든다!”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사는 웃음치료사 김형준(37)씨와 간호사 문경희(34)씨 부부는 아직도 이 약속을 지키며 산다. 사실 그렇게 살지 않을 수도 없다. 책에 파묻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취향’을 확인한 순간 “드디어 내 반쪽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외모까지 닮은 그들은 둘 다 지독한 다독가(多讀家)였다. 남편 김씨는 10년 전쯤 ‘남들 사는 대로 살아서는 달라질 게 없겠다’는 결심을 했다. 술과 담배를 딱 끊고 그 돈으로 책을 사 읽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던 아내 문씨는 소파나 TV·오디오 대신 책을 담은 라면박스를 트럭 두 대에 가득 실어 ‘혼수’로 가지고 왔다.





그들의 ‘서재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딸 형경(6)과 아들 준수(4)는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이 생활에 ‘편입’됐다. 문씨는 형경이가 태어나자마자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갓난아기한테 무슨 효과가 있었느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돌 무렵부터 아기는 ‘책을 읽어달라’며 보채기 시작했다고 한다. 딸은 이제 밤을 새워서라도 읽고 싶은 책은 다 읽으려는 버릇이 생겼다. “새벽 세 시가 넘도록 책을 읽어주면서 제가 고시생이 된 기분이었어요.”(아내) “가장 중요한 건 부모도 행복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거예요.”(남편) 둘째 준수는 아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책을 읽어줬다.

24평 아파트의 디자인은 철저히 “어디에 무슨 책을 놓느냐”가 기준이 됐다. 방에는 부부가 읽는 책으로 꽉 채우고, 거실에는 키가 큰 어린이책을 갖다 놓았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4단 책꽂이를 사방에 뉘어 놓고 백과사전·위인전·역사·자연과학처럼 분류별로 꽂았다. 책이 너무 많아 얼마 전 눈물을 머금고 1000권을 처분했는데도 아직도 아이들 책만 2000여 권이다. 집안뿐 아니라 ‘집 밖’도 중요한 조건이었다. 책을 읽기 좋은 동네에 살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도서관과 가까운 곳을 찾으려고 한겨울에 그 무거운 책들과 아이들을 끌고 세 번을 옮겨 다닌 끝에 지금의 집으로 왔다. 집 바로 앞에 인창도서관이 있다. 맹모삼천지교는 옛날 얘기가 아니었다.

형경이와 준수는 책이 곧 ‘장난감’이다. 책을 읽으면서 책으로 도미노 놀이도 하고 탑도 쌓는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지 않는 날은 주로 하루종일 책을 읽는다. 가족은 거실에서 책을 읽다가 그대로 잠들기도 한다. 아내 문씨는 “안경을 거실 바닥에 벗어두고 잠들어서 아침에 안경을 밟아 깨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 많은 책들을 아이들은 서너 번 반복해서 읽는다. 나중엔 헷갈린 나머지 다 읽은 책은 표지에 스티커를 붙였다. 그런데 뜻밖의 효과가 생겼다. “스티커를 붙여놓고 보니 아이들이 어떤 책에 관심이 있고 무엇에 재능이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어요.” 딸은 성경 이야기와 역사·문화 책을, 아들은 자연과학 책을 좋아한다는 것. 부모는 아이들의 이런 관심을 ‘체험’으로 연결시켜 준다. “예를 들어 무당벌레 책을 보고 나면 근처 야산으로 무당벌레를 보러 가요. 거꾸로 식물원에 갔다 오면 식물에 대한 책을 찾아 보여주는 식이죠.” 책을 많이 읽은 남매의 표현력은 남다르다. 몸이 아프면 아프다고 하는 대신 이렇게 말한다. “엄마, 나 면역력이 떨어졌어요!”
Posted by 퓨전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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