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식이 내일은 쓰레기 되는 혁명적 속도의 시대 왔다"

[중앙일보 배명복.최지영.신인섭] 지식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가장 앞서 예견한 세계적 석학 앨빈 토플러(78.사진)가 산업자원부 초청으로 방한했다. 배명복 본지 논설위원이 13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그를 만나 21세기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귀하는 시간.공간.지식 세 가지가 미래의 부(富)를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최신작인 '부의 미래'에서 주장했다. 지식이 중요하다는 것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지 않은가.

"사회가 바뀌는 속도만큼 지식의 모습도 급진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내가 처음 지식에 대해 언급했을 때보다 지식의 축적과 확산 속도, 또 쓸모없어지는 속도도 눈부시게 빨라졌다. 그 결과 지식 자체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이 책에서 나는 빠른 속도로 쓸모없어지는 지식을 '압솔리지(obsoledge)'라는 조어로 설명했다. 기존의 지식이 한 사회, 한 나라에 국한됐다면 지금은 세계 모든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전파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는 것처럼 즉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압솔리지와 유용한 지식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

"지식이나 정보가 기반하고 있는 과거의 참조 자료를 모두 의심해야 한다. 과거에 알고 있던 지식이 사실이 아니거나 미완성이거나 쓸모없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주로 쓰는 것이 유추법이다. 논의 대상 자체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던 대상과 비슷하다는 전제하에 서로 비교해 해결책을 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대상 자체가 빠르게 바뀌는 세상에서는 과거에 알고 있던 대상과 내가 봉착하고 있는 문제 간의 유사성 자체가 없어지는 추세다."-귀하는 정부가 빠르게 변하는 시간 속에서 가장 뒤처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작은 정부일수록 좋다는 뜻인가.

"정부의 변화 속도가 느린 가장 큰 이유는 정부 조직이 여전히 산업화라는 '제2의 물결'에 익숙하기 때문이며, 급속히 바뀌는 경제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쓸모없어진 정부 조직을 구조적으로 재편해야 하지만 만병통치약은 없다. 정부 조직을 수직적인 대신 수평적으로 바꾸고, 기능을 줄이는 연구에 착수해야 한다고 본다."-정부의 권위나 힘이 없어진 미래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가 될 가능성이 큰 것 아닌가.

"그렇게 보진 않는다. 정부의 일부 기능을 대신해 줄 새로운 세력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급부상하고 있고, NGO나 시민사회도 떠오르고 있다. 또 사회적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교의 역할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공공부문과 개인부문이라는 과거의 이분법적 구분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미래 사회에서는 빈부 격차가 더 커질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떤 학자도 아직까지 속시원한 해결책을 내놓은 적이 없다. 미국의 민주당이나 유럽의 사회민주당이 이 문제에 대해 늘 불평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내놓는 해결책이 더 이상 이 시대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의 아이디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나 린든 존슨 대통령 시절에 제시했던 해결책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더 많은 사람이 대량생산 부문보다는 서비스 부문에 종사하고 있고, 근무시간도 바뀌고 있다. 그러나 좌파는 달라진 세상에 맞는 창의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중산층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미래 사회의 계층 구조는 어떤 모습으로 바뀔 것인가.

"내가 도입한 '프로슈머(Prosumer)'란 개념을 사용한다면 이제까지 썼던 경제적 통계는 무의미해진다. 과거 경제학에선 세탁기를 사면 이를 소비로 쳤다. 하지만 세탁기를 사서 자기 옷을 세탁한다면 이는 소비이면서 동시에 생산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계층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돈이 계층을 따지는 유일한 기준은 아닐 것이다. 돈은 적게 벌지만 훨씬 더 행복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경제적 수치만 가지고 부를 평가하는 사회는 수명을 다했다."-공간의 중요성과 함께 우주공간이 가치를 창출하는 장소로 등장할 것이라고 역설했는데 우주에서 어떻게 부를 창조할 것인가.

"우주의 중요성은 당장은 드러나지는 않지만 실로 크다. 1000년 뒤 후세가 우리 세대에 대해 뭘 기억할까. 지구상에서 벗어나 부를 창출한 첫 세대로 기억할 것이다. 중력이 없는 공간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또 우주엔 무한한 에너지원과 자원이 있다. 지금 당장 생활에 활용하는 것들도 있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좋은 예다. 외국에 나가 현금인출기(ATM)를 쓸 때도 위성의 도움을 받는다. 우주는 벌써 알게 모르게 경제와 통합돼 있다."-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는가.

"북한 핵이 한반도.아시아, 나아가 세계에 미칠 영향이 걱정이다. 이는 비확산 정책에 대한 뼈아픈 일격이다. 북핵으로 인해 아시아 각국이 핵 보유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또 이전에는 국가가 핵을 보유했으나 지금은 테러리스트를 걱정해야 한다. 핵은 그 어느 때보다 개발하기도, 원료를 구입하기도 쉬워졌다. 북한의 핵 개발은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에 큰 위협이다."-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가 이미 무너지고 있다고 보는데 이를 살릴 방법이 있나.

"없는 듯하다. 우리는 핵이 보편화하는 사회에서 살아야 할지 모른다. 작은 그룹도 핵을 보유하는 시대 말이다. 오사마 빈라덴이 미리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게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른다. 대비를 할 수 있게 했다는 의미에서다. 세계 어디선가 제2의 빈라덴이 핵무기를 갖고 또 다른 테러를 준비하고 있지 않다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한국 금융위기 때 일본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고 조언했었다. 그 실수가 무엇인가.

"일본은 제조업을 너무 강조했고 서비스의 중요성은 무시했다. 이는 아직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수출을 강조하던 1970년대엔 수출 시장에 경쟁자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쟁자투성이다. 일본 사회는 개혁에 대한 저항이 거세며 서비스 부문의 개혁이 더욱 어렵다. 일본의 관료주의는 효율적이지만 서로 다른 관료주의가 모두 연결돼 있어 개혁을 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 이는 한국이나 미국에 대한 메시지도 된다. 새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사회.조직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보다 훨씬 쉽다. 기술만 개발하고 사회 변화가 이를 못 따라간다면 아주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중국의 연구개발(R&D) 투자가 일본을 추월했다. 미래에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수퍼파워 역할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 보는가. 미래의 중.미 관계를 결정짓는 요인은 무엇인가.

"중국의 R&D 투자는 당장 쓸 수 있는 실용적 측면에 집중되고 있다. 장기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미국 정부의 지원도 줄어들고 있다. 미국은 물론 인류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중국의 미래에 대해 전망하자면 현재의 직선적 성장을 지속하진 못할 것이다. 만물은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10억 인구를 빈곤층에서 탈피시키려는 노력은 세계에 좋은 것이지만 이런 변화를 너무 압축해 짧은 시간에 달성하려 한다면 사회적 불안정을 야기할 것이다. 곳곳에서 국지적 소요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에 대한 지지는 과거 어느 때보다 낮다. 이를 두고 과거 제국들이 몰락한 것처럼 미국도 몰락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는 순진하고 단순한 생각이다. 세계 각국에서 반미주의는 계속 횡행하겠지만 진짜로 무슨 일이 닥치면 소방수처럼 미국을 찾을 것이다. 그 위협은 러시아가 될 수도 있고, 중국이 될 수도 있다. 국제사회는 겁에 질리면 미국을 찾을 것이다."정리=최지영 choiji@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배명복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bmbmb/[내 손안에 정보 조인스
Posted by 퓨전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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