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다음은 국내 최고 수준의 싱크탱크로 평가받는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국내외 경제 현안 분석과 전망을 5회에 걸쳐 게재한다. 김광수연구소가 발간하는 보고서와 시평은 사회 및 경제 현안에 대한 정확한 문제 진단과 처방으로 관가와 전문가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원고들은 올초 김광수 소장이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파격적인 원고료를 받고 게재했던 글이다. 이들 원고 가운데 일부는 일본의 경제 전문지 '도요 게이자이(동양경제)'지에 번역돼 수록되기도 했다. 미디어다음은 김광수경제연구소와 '이코노미스트'의 양해를 얻어 이 글을 더 많은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게재순서> 1.한국경제와 가계의 과다 부채(17일) 2.10년 주기로 반복되는 미국 쌍둥이 적자와 달러 약세(19일) 3.과잉투자와 한국경제(21일) 4.인구구조 변화와 경제성장(22일) 5.인구구조 변화와 정치경제(23일) |
"기업 설비투자 침체는 99~2000년의 과잉 설비투자 때문" | | ⓒ미디어다음 김준진 | 한국의 기업부문 설비투자는 지난 1999∼2000년 기간 동안에 발생한 IT버블 이후 최근까지 침체를 지속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부에서는 장기간의 설비투자 부진으로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는 기업 투자부진의 원인을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나 참여정부의 분배위주 경제정책 탓으로 몰아세워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조장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즉,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선동하는 세력들의 주장에 의하면 기업들은 국민들의 반기업적 정서나 참여정부의 분배위주 정책 때문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된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한국의 기업 경영자들은 대국민 자선사업이나 개인적인 정치적 편향성을 기준으로 설비투자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는 주장이 되는 셈이다. 참으로 유치하기 그지없는 주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새해에는 이러한 저차원적이고 소모적인 싸움이 사라지고 보다 논리적이고 생산적인 논쟁이 활성화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이제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관점에서 한국경제와 기업투자 문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결론부터 말하면, 2001년 이후 국내기업의 설비투자 침체는 주로 IT버블이 발생한1999∼2000년의 과잉 설비투자에 기인한다고 보아야 한다. <도표1>에서, 1999∼2000년의 2년간 기업 설비투자는 실질GDP성장률을 4% 가량 끌어올리는 과잉투자 양상을 보였다. 이것은 지난 1990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서, 반도체특수 등으로 기업 설비투자가 절정에 달했던 1994∼1995년의 실질GDP성장률 기여도 3.3%와 2.7%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1994∼1995년의 과잉투자는 결국 1997년의 IMF사태를 초래하는 한 원인이 되었다는 점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과 일본의 경우에도 1990년 이후 기업 설비투자가 매우 활발했던 해에도 실질GDP성장률 기여도는 1.5%를 넘지 않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1999∼2000년 기간에 기업의 설비투자는 1998년 IMF사태로 인한 기술적 반등을 감안하더라도 가히 폭발적인 과잉투자였다고 할 수 있다.
"과잉설비투자 부실화 안 되고 순조롭게 상각돼" | | (주) 한국은행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
그러나, 다행인 것은 지난 2001년 이후 이들 과잉설비투자가 부실화되지 않고 전체적으로 비교적 순조로이 상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1년에는 IT버블 붕괴로 수출이 감소하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신용카드 버블로 인해 내수가 호조를 보였다는 점과 2002년 하반기부터는 중국특수와 세계경제 회복세로 인해 수출이 호조를 보여 과잉설비투자 상각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용카드 버블이 한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지만 부분적으로는 기업의 과잉설비투자 상각이 부실화되지 않고 순조로이 상각되도록 기여했다는 점은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또, 2005년에도 중국경제는 고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보여 국내 기업의 수출 증가세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경우, 1999∼2000년에 발생한 과잉설비투자 상각이 완료되기 시작하는 2006년부터는 기업의 설비투자가 회복세를 나타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구체적으로 지난 2000년 이후 제조업 업종별 수급갭(=공급-수요) 동향을 살펴보자. 1999∼2000년 IT버블기에 음식료품, 고무/플라스틱, 조립금속, 기계장비, 컴퓨터/사무용기기, 자동차/부품, 운송장비 업종을 중심으로 대규모 과잉 설비투자가 발생하였다. 이 가운데 내수업종인 음식료품, 비금속광물, 조립금속, 전기기계장비 업종과 수출경쟁력을 상실해가는 섬유제품, 컴퓨터/사무용기기 업종은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반면, 수출업종인 화학제품, 고무/플라스틱, 1차 금속, 기계장비, 전자부품/통신장비, 자동차(내수는 침체), 조선 등은 수출호조에 힘입어 호황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로부터 2003년부터 본격화된 내수침체는 제조업에 부분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제조업 전체적으로는 수출호조로 아직 건실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2005년에도 대중국 수출 호조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반도체, LCD, 휴대폰 등 가장 경쟁력이 있는 첨단업종의 수출호조도 지속될 것으로 보여 내수침체가 국내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은 한정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가장 경쟁력이 있는 전자부품/영상/통신장비 제조업은 2000년부터 대규모 설비증설 투자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출호조가 지속되고 있어 올해에도 대규모 설비증설 투자가 필요한 상황으로 보여진다. 일부 해외기관의 전망에 의하면, LCD 세계수요는 2005년부터는 증가세가 둔화될 것이며 아시아 지역이 수요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나, 이는 북미지역과 유럽지역의 LCD TV 수요를 다소 과소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2007년 세계 LCD 시장규모는 700억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국내 LCD업계의 호조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PDP는 40인치 이상 대화면 시장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40인치 이상 LCD 제품개발이 매우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용도의 다양성 등에서 이미 LCD에 밀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계 휴대폰 수요는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 카메라폰 교체수요가 빠르게 발생하고 있어 2008년까지 지속적인 증가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반도체는 2005년에는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 대만, 중국 등 아태지역 수요를 중심으로 다시 증가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되므로 일부의 지나친 비관적 전망은 설득력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시장수요 전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MOS로직 제품과 MOS마이크로 제품 수요는 2007년까지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이는 반면 메모리제품 수요는 다소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부품 제조업은 2003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자동차 내수침체에도 불구하고 수출 호조에 힘입어 비교적 안정적인 추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국내 자동차 업계 전체로는 평균가동률이 80%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 여전히 과잉설비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으로 업체별 수출실적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자동차 내수는 전적으로 내수경기 회복여하에 달려 있지만 경기상황이나 신모델 출시 영향에 관계없이 단순히 소비자들의 자동차 평균교체기간을 5년으로 간주할 경우 내수회복은 2007년 무렵에나 가능하다는 점에서 내수위주 업체는 당분간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제조업 창업 줄어드는 건 중소기업 구조적 문제점 때문 | | (주) 중기청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 다음에, 중소기업 투자활성화 문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이를 위해 중소기업 창업 동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표2>에서, 신설법인은 2002년 초 월 4,000개 수준에 달했으나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04년 말 현재 월 2,500개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2004년 말 현재, 서비스업 분야의 신설법인 수는 월평균 1,850개 가량이며 제조업 분야의 신설법인 수는 2002년 초 월 1,000개 가량에서 2004년 말 340개 정도로 급감하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제조업 분야의 창업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는 것은 단순히 경기침체에 기인하는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는 한국 중소기업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반영하고 있는 현상이라고 보여진다.
국내 중소제조업의 공동화 현상은 부분적으로는 국내 제조기업의 해외이전에 기인하는 면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절대적으로 제조업 분야의 창업 급감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지역별로는 서울지역의 창업이 격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서울 1극 집중의 불균형 발전에 기인한다. 업종별 창업 면에서는, 제조업 분야의 창업은 전 업종에 걸쳐 크게 위축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섬유/가죽 업종과 IT버블 붕괴의 영향으로 전기, 전자, 정밀기기 등 IT업종의 창업 위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반면, IT서비스업, 연예, 인력알선, 경비, 청소 등 이른바 생계형 사업서비스업의 창업만이 유일하게 늘어나고 있는 양상이다. 이로부터, 중소기업 창업은 양적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이처럼 전통업종뿐만 아니라 첨단 IT업종의 창업도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원인은 중소기업 분야의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우리 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코스닥 상장기업의 50, 60대 CEO들은 60, 70년대에 전통업종 중심의 창업을 한 사람들인 반면 30, 40대 CEO들은 90년대 이후 첨단업종 중심의 창업을 한 사람들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연령대별로 첨단업종과 전통업종 CEO들의 구성비율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도표3>에서 40대 이하는 첨단업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50대 이상의 경우에는 전통업종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60대 이상인 경우 전통업종 비중이 70%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나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로부터, 한국 중소기업 전체로 볼 때, 60,70년대 전통업종을 중심으로 창업했던 CEO들이 은퇴하고 90년대 첨단업종을 중심으로 새로이 창업한 CEO들로 바뀌는 세대교체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 분야 세대교체에 따른 투자 단절 현상 발생" "내수침체가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 한정적" | | (주) 코스닥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
그런데, 전통업종 CEO들은 중소기업 분야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로서 투자여력을 지니고 있지만 은퇴시기를 맞이한 이들로서는 사양화되고 있는 기존의 전통업종 사업에 신규투자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거의 경험이 없는 고성장-고위험의 첨단업종 신규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반면, 첨단업종 중소기업 창업자들은 과거 전통업종 중소기업 창업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5세 가량 늦은 나이에 창업을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과거에 비해 첨단업종 중소기업 분야의 기업가정신이 크게 쇠퇴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가 하면, 이들 첨단업종 창업자들은 투자의욕은 있어도 투자여력이 별로 없다. 이로부터, 한국 중소기업은 전체적으로 세대교체에 따른 투자부진 내지는 투자단절 현상이 발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는 제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안정적인 부가가치 창출 없이는 서비스업의 성장이나 고용안정 나아가서는 한국경제의 성장도 기대할 수 없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국내 제조분야에 있어서 적정 규모의 투자 활성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중소기업 분야의 세대교체가 원활히 이루어지고 조기창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경제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둘째, 최근 내수침체의 최대 원인은 가계부문의 서비스 소비지출 감소에 기인한 것이므로 내수침체가 수출위주의 국내 제조업에 미치는 영향은 한정적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내 제조업체들은 지나치게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전략적인 투자를 소홀히 하여 경쟁력을 상실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권고한다. 셋째, 정책당국은 슬로건식의 정책나열로는 결코 투자활성화를 꾀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경제 전체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구조적 변화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대안의 마련과 실천이 정책당국에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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