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던 대만 최고 부자 왕융칭(王永慶) 대만플라스틱그룹 회장이 만 89세의 나이로 일선에서 물러났다. 대만플라스틱 임시주총은 지난 5일 왕회장을 퇴진시키고 후임에 전문 경영인 출신의 리즈춘(李志村·70) 사장을 겸임시키겠다는 이사회 결정을 통과시켰다.

1954년 대만플라스틱을 창업한 이후 52년 동안 “기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단 하루도 쉴 수 없다”며 달려온 그도 역시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는 못했다.

왕회장은 1917년 타이베이 근교 신톈의 어려운 농촌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차밭을 일구었지만 생활은 어려웠다.

16세에 학업을 중단하고 조그만 쌀집을 열었다. 당시는 쌀 가공기술이 신통찮아 돌이 자주 들어가는 것이 골칫거리였다. 그는 쌀을 팔기 전에 일일이 돌을 걷어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또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쌀 배달을 시작했다. 공책에다 단골 고객이 언제 쌀을 사고, 언제 월급을 받는지 관련 정보를 기록했다가 고객이 쌀을 사겠다고 여길 때쯤 미리 고객에게 쌀을 배달해주는 방식이었다.

이같은 ‘고객 감동’이 주효해 하루 12말을 팔던 쌀이 100말 이상 팔리기 시작했다. 돈이 모이자 정미소를 차렸다. 그는 대만 정부가 공업진흥책의 하나로 미국 원조 자금을 활용해 석유화학 기초원료인 폴리염화비닐(PVC) 공장을 세울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에 착안해 54년 대만플라스틱을 창업, 기업인으로 변신했다. 현재 대만플라스틱그룹은 30여개 계열사에 7만명의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지난해 1백18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해 석유화학업종에서는 중국석유화학, 일본 미쓰비시화학, 일본 미쓰이화학에 이어 아시아 4위를 기록했다. 플라스틱 생산량으로는 세계 2위다.

그는 검약한 생활로도 유명했다. 새 양복 한벌 걸치는 것을 사치로 여기고 목욕 수건 1장을 30년 쓰는 자린고비 생활을 했다. 전화비를 아껴야 한다며 외국에 유학간 자녀들이 국제전화를 걸어오는 것도 반기지 않았다. 대신에 편지를 매주 보내면서 우표값을 아끼기 위해 여러장의 편지지에 빽빽하게 글을 썼다.

건강 비결로 산보를 꼽기는 하지만 그는 의사인 사위가 몸에 좋다고 추천하는 건강보조식품을 즐겨 든 덕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유명화가의 그림이나 붓글씨를 소장하고 있고, 시간이 나면 중국 전통의 경극 관람을 즐기고 있다.

그는 자식 문제로 골치가 아팠다. 영국 런던대학 화학박사인 맏아들 왕원양(王文洋·55)은 80년 귀국 이후 부친의 가업을 이어받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결혼 문제로 다투는 바람에 결국 파문을 당했다. 왕원양은 현재 21억달러를 중국에 투자한 홍런(宏仁) 그룹의 회장으로 대륙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중국 투자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대만 정부가 석유화학 업종의 투자를 금지하는 바람에 실현되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의 가장 큰 희망은 중국에 초대형 석유화학 기지를 세우는 것이었다. 80억달러를 투자해 다국적 기업이 중국시장을 장악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또 1백50억 대만달러를 투자해 중국의 베이징, 샤먼, 푸저우 등 3곳에 총 1만1천 병상의 중국 최대 병원을 세우려는 꿈도 가지고 있다. 현역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생전에 이런 꿈이 실현될지도 주목거리다.

공책에다 단골 고객이 언제 쌀을 사고, 언제 월급을 받는지 관련 정보를 기록했다가 고객이 쌀을 사겠다고 여길 때쯤 미리 고객에게 쌀을 배달해주는 방식이었다

크흐.. 이런 방식을 온라인에서 제공한다면??


Posted by 퓨전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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