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행동법칙(52)]'사람' 아닌 '일'에 대한 의심과 확인이 중요해

세상살이에서 '신뢰'는 대단히 중요하다. 어떤 학자에 따르면 신뢰야말로 현대 인간 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그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은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쇼핑을 생각해보기만 해도 증명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컴퓨터를 한 대를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구입한다고 해 보자. 그 과정에는 수많은 신뢰관계가 구축돼 있으며, 그 신뢰관계 중 어느 하나라도 깨질 경우 당신의 컴퓨터 구매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 실패한 신뢰관계가 다른 말로 '사기(詐欺)'라는 것이다).

당신이 컴퓨터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제조자가 물건을 다 만들면 유통업자에게 넘어간다. 유통업자에게 곧바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물류업자를 통해 그 물건이 넘겨질 수도 있다.

그리고 다시 유통업자가 소비자에게 물건을 넘길 때도 물류업자를 통해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가 유통업자(인터넷 쇼핑몰)로부터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대체로 금융기관을 거쳐야 한다(신용카드나 인터넷뱅킹의 이용).

언뜻 보면 간단하고 당연한 과정이지만 '제조업자 => 물류업자 => 유통업자 => 물류업자 => 소비자 <= 금융기관 <= 유통업자'로 구성된 비즈니스 사슬은 어느 한쪽만이라도 배신을 할 경우 무너지고 만다.

그런데 단순화시켜서 그렇지 제조업자에게는 또 원료제공자와의 신뢰관계가 추가되고, 모든 업종의 기업에서 경영자와 직원의 신뢰관계가 추가적으로 요구된다. 컴퓨터 한 대를 사는 데도 셀 수 없이 많은 신뢰관계가 요청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신뢰관계를 정당한 사유없이 깨트린 측에는 '원가(原家)' 이상의(그에 따른 손해 이상의) 제재(制裁)가 가해지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가 깨트린 신뢰관계는 쌍방적인 것을 넘어 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이다(사회의 룰을 깨트린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신뢰가 중요하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신뢰가 중요하다'는 말은 '다른 사람을 신뢰해야 한다'는 의미 이전에 '다른 사람에게 신뢰를 주어야 한다'는 의미로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나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나와 거래를 하는 사람이 나를 믿지 않는다면 거래는 성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나를 믿게 하는 것이, 그 사람을 믿는 일보다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상대방 또한 마찬가지다. 상대방 또한 나로 하여금 그를 믿게 만드는 일이 우선이다. 이렇게 하여 서로가 서로를 신뢰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거래는 성사되고, 성사된 거래가 반복될 때 신뢰의 정도도 깊어진다.

하지만 '신뢰가 중요하다'라고 우리들이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곧 '신뢰란 (의도적으로 또는 본의 아니게) 언제든 배신당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독교에서 '살인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와 같은 내용의 십계명을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그런 행위의 유혹에 쉽게 많이들 빠져들기 때문인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신뢰가 중요하다'고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은 곧 '신뢰를 너무 신뢰하지는 마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여기서 잘 이해해야 할 것이 '사람에 대한 신뢰'와 '일에 대한 신뢰'를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종교인은 아니지만 예수님께서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신뢰와 관련하여 핵심을 찌르고 있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씀을 신뢰와 연관시켜 보자면 이렇다. '신뢰를 깨트리는 것은 죄다. 그래서 그 죄는 응당 그에 상응하는 미움과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 자체를 미워하거나 증오할 필요는 없다.'

한 걸음 더 나가보자. 그렇다면 내 얘기는 '신뢰라는 것이 언제든 깨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므로 100% 신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반만 맞는 말이다. 신뢰라는 것은 언제든 깨어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100% 신뢰하는 것은 불가하다. 그런데 그 얘기에서 한 가지 누락된 중요한 사실은 100% 신뢰하지 않는 대상이 '사람' 자체가 아니라, '일'이라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사람 자체는 믿을지언정 일의 진행에 대해서는 항상 의심하고 확인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 직장인이라면 잘 알 것이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실수는 하게 마련이고,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가끔씩 사고가 터지게 마련이라는 것을.

한 달 정도 걸리는 어떤 중요한 일을, 중요하기 때문에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겼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마감을 하루 앞두고 그 일을 못하겠다고 하는 황당한 일도 겪어본 직장인들 또한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일 잘하는 직장인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5단계를 거쳐야 하는 일이 있다면 4단계에서 사고를 방지하는 비용보다는 3단계에서 사고를 방지하는 비용이 적게 들고, 3단계에서 사고를 방지하는 비용보다는 2단계에서 사고를 방지하는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일에 대해 의심을 하는 태도는, 과도하지만 않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의심을 해야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사고가 터지더라도 그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나아가 의심을 하는 태도는, 과도하지만 않다면(절대로 과도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강조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과한 것보다는 약간 모자란 것이 대체로 좋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주는 역할도 해주고, 창의적인 발상도 가능케 한다.

세상에 당연한 것으로 알려지고 상식이라고 퍼져 있으며 진실이라고 강조되는 것들을 의심하는 태도는 실패의 가능성을 줄이고 성공을 앞당기는 지름길이다.

Posted by 퓨전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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